1895년 고종의 <교육입국조서>와 연이어 <소학교령>이 발표되고, 이에 따라 소학교의 설립이 지방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 남양군 음덕면 남양리(현 화성시 남양동)에 ‘남양공립소학교’가 개교함으로써 신학제에 기반한 화성의 근대교육이 시작되었다.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송산, 팔탄, 삼괴, 동탄, 향남, 정남, 비봉, 서신, 봉담, 매송, 양감, 마도, 우정 등의 보통학교화수, 발안, 송라, 장안, 수화 등의 간이학교가 개교함으로써 교육기관의 확충이 이루어졌다. 이들 공립학교는 지역의 근대교육을 이끌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일제의 민족말살, 황국신민화 정책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반면 화성지역 도처에 설립된 서당, 야학 등은 일제의 교육에 저항하며 활발하게 민족교육을 추진하였다.해방과 한국전쟁으로 화성의 교육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특히 1948년 <고등공민학교규정>에 따라 팔탄, 서신, 마도, 송산, 남양고등공민학교가 설립되고 이들이 1950년대 이후 중학교로 인가되고, 동시에 고등학교의 설립도 활발하게 추진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화성의 현대교육에 큰 의미를 갖는다. 또 2000년대 이후 대단위 택지개발의 영향으로 초중고등학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도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화성의 근현대 교육 기획전은 이러한 화성지역 교육의 변화를 도표와 설명, 다양한 사진과 유물을 통해 보여주는 자리로 마련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가 비판 없이 수용했던 학교 교육의 실상, 그 진실과 낯설게 마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